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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역사에 대해서

by 운좋은미자씨-^^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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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사극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은 겨울에 정말 추웠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다가 정말 추웠을까? 보온이 될만한 것은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옷은 겹쳐 입으면 보온성이 올라가서 따뜻하다고 하는데 과거에도 그렇게 입은 걸까?라는 의문으로 우선 한복에 과거 역사에는 무엇을 사용했고 어떻게 지금과 다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복의 역사

고대시대부터 내려오는 조선옷 즉 대한민국의 고유한 의복을 한복 (韓服, 문화어: 조선옷)이라고  합니다. 한복의 기본 구성인 치마와 저고리, 바지 등은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고 기본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입었으나 신분과 계층에 따라 양반과 평민의 의복은 원단과 컬러 등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평민 계층은 주로 흰색의 한복을 입었습니다. 한복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활동성을 중시하며 저고리와 치마, 즉 윗 아래옷이 분리되어있어, 형태상으로 구분된다. 현대 의복에  비유하면  원피스가 아닌 투피스(상의+하의) 형태를 지닙니다. 또한 원단 자체를 보면 직선형으로 신체에 딱 달라붙지 않지만 인체에 입을 경우 곡선이 살아나게 도와주는 미적 특징도 나타납니다. 한복은 서양 의복과는 다르게  주머니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한복은  남녀 불문하고 주머니를 허리 안쪽에 차고 다녔습니다. 현대에 나타나는 한복은 조선시대에 입었던 한복과 비슷하며 격식을 갖추는 자리 나 명에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20세기 이후에는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한 개량한복을 생활화하기 위해 대중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소재, 색 등을 새롭게 접목하며 여러 한복 디자이너들이 한복의 생활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민속화 씨름"을 보며..단원 김홍도 선생님의 작품

삼국시대 복식에서 한복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 기본적인 한복 구조는 저고리, 바지, 치마이고 이것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본구조는 그대로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폭, 형태, 길이 등이 조금씩 변화하였습니다. 폭에 관해서는 좁은 바지, 넓은 바지, 넓게 펼쳐진 밑단의 바지, 발목에 주름 잡혀 좁은 발목 형태의 바지 등  길이와 폭이 다양해졌고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허리 정도의 길이에 오는 저고리는 남녀 구분 없이 입었다.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남성의 경우 좁고 남방과 비슷한 형태의 좁은 저고리가 허리 부근까지 오도록 입고 펑퍼짐한 형태의 바지를 입은 뒤에 허리에 혁띠를 착용했고 이때 저고리의 끝단은 접어 올려 입는 것이 특징이었다. 여성의 경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긴 형태의 치마를 입었다. 삼국시대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복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신라의 복식은  지리적인 영향으로 백제와 고구려에 비해 늦게 발전했지만 당나라와 백제와 고구려에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복식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나라의복식을 남자 귀족들이 먼저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진덕여왕 2년(648)에 당의 복식이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라는 당의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고위층, 귀족들은 당나라의 옷 형태가 융화되는데 반면 백성들은 저고리 바지, 저고리 치마의 기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도 받음으로 심라만의 독자적인 복식이 겸용되어 발전했다.
고구려의 복식은 남성과 여성 모두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길게 내려왔고, 하의는 바지를 입었다. 귀족층의 경우는 바지의 폭이 넓어지게  입는 특징을 보였다. 여성은 저고리와 치마 또는 저고리에 바지나 치마를  겸해서 입었고,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다.  고구려의 복식은 중국의 복식과 많이 다르지는 않으나 상의 저고리의 좌임, 우임, 합임(양쪽 어느 곳으로 모으지 않고 가운데로 모아 입은 형태) 등이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머리의 형태에서 상투나 자연스럽게 풀어헤친 머리 등으로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미적 인 측면에서도 무명 와 명주, 삼베를 이용해 다양함을 추구했다. 양잠이 발달했으며 옷감의 색 또한 다양해 검은색, 노란색, 흰색, 보라색 등이 옷감에 쓰였다. 고구려 복식의 특징은 옷의 활동성을 중시하였다는 것인데  항상 전투복과 같은 옷을 입고 비상사태에 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의 복식은 신라와 고구려에 비교해서  아름다움이 두드러져서 여성적인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백제의 복식은 고구려와 흡사했으며 공식석상의 이나 중요성이 높은경우 여인들은 머리장식을 했다.   남자의 경우  신하들의 직급에 따라 관모에도 장식 자체가 구분되었으며 좌평~나솔까지는 은제를 부착했으며 임금의 경우 금제를 부착했다. 백제는 고이왕 27년(260년)에 관복의 제도에서 관복의 색감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정도로 의복이 발달되어있었다. 계급에  따라 사용되는 색상과 높이 등이 달랐다.

조선시대의 한복

조선초기에는 유교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므로 복식에서도 계층적 신분질서를 나타났다. 저고리의 길이는 길어지고 치마는 허리에서 입는 형태여서 폭이 넓어지다가 저고리는 허리 윗부분으로 그 길이가 짧아졌으며 좀 더 가슴 부분으로 올라갔다. 조선 중기에  남성과 여성한복 모두 등 길이가 길어 허리 밑까지 내려올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짧아졌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좀 더 수치를 크게 입었다면 후기에는 품도 몸에 맞도록 입게 되었다. 조선 말엽, 저고리의 길이는 축소화가 진행되는 반면 치마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폭도 넓어진다. 저고리가 치마 말기를 가려 주지 못함에 따라 치마와 저고리 사이의 겨드랑이 밑을 가려 주기 위하여, 한 자정도 되는 넓은 띠를 이 부분에 매었다. 종 모양처럼 저고리의 실루엣이 봉긋해지는 형상으로 바뀌게 된 것은 18~19세기이다.  500년 조선 통치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 유행을 타기도 했으며 현재에 이르러 대부분의 한복을 지칭하는 형태 된 것은 조선 후기의 형태(19세기의 한복)이고 지금의 한복과  가장 비슷하다. 

 

지금의 한복

일반적으로 오늘날에는 한복을 특수한 날이나 명절에만 입게 되어  생활 한복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 한복 디자이너가 1984년 개량된 한복을 작품으로 발표한 것을 시초로 발전하였으며 기존 한복과 달리 개량한복은 저고리의 고름이 착용에 용이하게 단추로 바꾸고 부피가 큰 치마를 서양식 의복과 접목하여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다양하게 개량한복이 발전하여 원피스처럼 한복을 변형하여 치마길이는 짧게 하기도 한다. 한복이 비싸기도 하고 입을 경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를 역으로 이용해 한복 대여업체들이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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