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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패션 정보

의류의 역사

by 운좋은미자씨-^^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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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의 종류와 역사를 알아보면서 원단을 어떻게 사용해서 의류를 만들었는지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의류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인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살펴보고 의류의 역사와 한복과 양복의 역사에 대해 조사해 보았습니다.

역사

의류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발견된 뼈바늘과 돌로 된 방추가 그 시대에 이미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때부터 시작한 인류의 의류의 시작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됩니다

종류별 역사

한복

대한민국에서 고대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의복을 한복(韓服, 조선옷)이라고 부릅니다. 평민과 귀족층, 지배층까지 옷의 재질과 종류를 달리해서 널리 입은 것으로 평민은 흰색옷을 거의 입었고 기본 구성은 저고리와 치마, 바지 등은 기본 골격으로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유지하고 있다. 한복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은 호복으로써  기본적으로 활동성을 중시하고 신체에 달라붙는 옷이 아니다. 호복인 한복은 이웃나라들의 전통옷차림인 기모노나 한푸 등과는 달리 저고리와 치마, 즉 형태상으로 윗 아래옷이 분리되는 것으로 구분된다. 또한 천 자체를 보면 직선형이지만  인체에 입을 경우에는 신체의 곡선이 살아나게 도와주는 미적 특징도 나타난다. 이는  주머니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입었던 한복과 현대의 한복은 유사성이 크다. 현대에서는 격식을 갖추는 자리 나 명절에 입는 경우가 많고,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한 개량한복으로  20세기 동안 그 외형의 변화를 겪었다.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소재, 특징과 색등을 새롭게 접목하며 기성복처럼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한복도 변화하고 있고 이것은 한복 디자이너들에 의해 현재도 시도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한복은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러서 완성된 것이다.
 삼국시대: 백제·고구려·신라의 삼국 모두 유(저고리), 상(치마), 포(두루마기) , 고(바지)와 대(허리띠), 화(신발), 관모(모자)를 썼다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두루마기는 귀족들은 평상복으로만 입었고 서민들이 주로 입었다. 대신 귀족들은  반비(半臂)를 입었는데 주로 귀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반비(半臂)는 여성들의 새로운 옷으로 소매가 없거나 있어도 짧은 옷으로 현대의 조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중국의 영향으로 지배층이나 귀족층에서는 중국 옷을 그대로 받아들여 입었고 서민층에서는 한복을 그대로 계승하여 입어 복식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다.
 조선시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상류층은 변했지만 한국 고유의 복식의 뿌리는 서민복으로 그대로 깊게 이어졌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한층 단순해지고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양반과 서민의 신분제도가 허물어지면서 옷의 신분 차이가 크게 없어졌다. 특히 여자 저고리는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양이 조선시대 후기에 나타났다. 오늘날의 저고리와 같은 길이가 짧아진 형태가 완성된 시기이다.

 

양복

서양식 의복을 양복(洋服)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식 정장으로 주로 남성이 입었던 것은 양복 여성이 입었던 것은 양장(洋裝)이라고 부릅니다.
고대시대: 페르시아·로마인·헤브라이·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등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고,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흰옷을 많이 입었다. 그리스인은 장신구를 많이 착용했고,  페르시아인은 원단을 재단하여 몸에 맞게 입었다. 신분에 따라 로마인의 의복은 달라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로마에는 신분계급에 따른 의복 차이를 보였다.
 중세시대: 실크로드의 영향으로 동양 문물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양에서 들여온 직물인 비단을 특히 많이 사용하였고  진주와  자수로 화려하게 의류와 본인을 장식하였다. 지배계층의 튜닉은 매우 정교하게 장식하여 입었고, 평민들은 흰색의 소박하고 깔끜한 튜닉을 입었다.
르네상스 시대: 중세시대 때보다 더욱 화려해지고 의상에 의한 신분 격차가 뚜렷이 나타난 시대이다. 특히 여성들은  정교하고 다양한 머리장식을 했으며  화려한 귀금속과 원단을 사용한 옷을 입었다. 원단은 큰 꽃무늬가 그려진 밝은 색 천을 특히 많이 사용했고 남성의 경우는 몸에 꼭 끼는 셔츠 위에 주름이 많은 겉옷을 입었고, 여성의 경우 웃옷은 몸에 꼭 맞게 하고 하의인 스커트를 부풀리는 종모양의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는 목둘레가 네모나게 파이고  스커트 안에  페티코트를 받쳐 입어 종 모양으로 퍼트려 입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영향으로 더욱 화려해졌다.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의류산업이 확대되어 기성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성복의 경우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 남자들은 무릎까지 오는 바지 대신 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이것은 남성복의 기본 양식이 되었다. 여성의 경우 단순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여 가벼운 면직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보닛을 썼다. 
 20세기: 대량으로 생산된 기성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여자들은 편한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스타일에 변화가 많았다
 21세기: 유니섹스 스타일이라며 남녀의 의류 구분이 없어졌다. 옷의 정식 분류의 장벽이 많이 허물어졌다. 한편 노출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해져서 거의 속옷에 가까운 길이의 바지인 핫팬츠까지도 용인되게 되었다. 
한국에서 양복: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당시 조선 정부가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제반 제도 개혁을 단행할 때 복제 개혁으로 처음 입게 되었다. 1900년(광무 4년) 4월 17일에는  조정 대신들의 관복을 서양식 관복으로 바꾸었는데, 당시 일본을 통해서  서양식 문관복은 들어온 것이다.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가 정한 칙령은  공복(公服)과 군복에 관한 규정으로 일반인의 복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양복이 들어온 것은 일본에 의해서 반강제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의류에 대한 역사와 종류를 알아보면서 대한민국의 한복에 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언제부터 발전되고 색을 입히고 다양해진 것인지 궁금증이 일어서 다음에는 한복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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