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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특성-장신구, 한복의 관리

by 운좋은미자씨-^^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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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특성 중에 한 가지는 원단뿐 아니라 한복에 같이 착용하는 장신구인 것 같습니다. 장신구의 종류로는  머리장식(-머리장식인 가체), 비녀, 족두리, 아얌·조바위, 노리개, 주머니, 보자기 등이 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계급에 따라서 알아보고  한복의 관리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복의 장신구

한복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장신구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종류는 귀고리, 노리개, 비녀,  가락지, 뒤꽂이, 단추 등이 있으며 진주와 산호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함이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귀고리는 마한 시대의 것이며, 임진강변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군의 유리구슬, 백제의 금동관, 은팔찌, 허리띠, 신라  고분군의 금제 장식 와 귀고리 등이 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고려 시대 때에는 장신구 중에  귀금속이 발달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종류는 팔찌와 옥으로 만든 목걸이, 단추형 장신구, 장식 편 등으로 화려해졌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귀족계급 사녀들은 허리띠에 금방울, 금 향낭을 패용했다."라고 쓰여 고려시대의 장신구의 발달이 나타났다. 조선 시대에는 장신구의 사용이 줄기 시작했으며, 17세기를 넘기면서 사용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머리장식(-머리장식인 가체)- 여성의 가발 일종인 가체

과거의 우리민족들은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머리를 땋아 내리고 다녔으며 결혼 후 남성의 경우 상투를 틀어 머리 위에 묶었고 갓을 머리에 써서 모자와 흡사한 용도로 사용했다. 그리고 챙의 길이와 모양이 지위에 따라 달랐다. 여자의 경우 머리를 목 뒷부분 바로 위에 동그랗게 말아서 두었다. 머리장식인 가체는 상류층의 여성과 왕정에서 사용되었고 기생도 쓰였다.  조선 사회에서도 가체의 크기와 무게가 더 위엄 있고 미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상류층 여성과 기생은 가체에 대한 욕망이 갈수록 더해지자 1788년 정조는 왕실 칙령으로 가체의 착용을 금지했다. 조선 사회는 유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했기에 가체에 대한 상류층의 욕구와  유교사상의 충돌로 규제했다. 비녀의 길이나 색상이나 재료들도, 소재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신분에 따라 상류층은 금, 은, 산호, 비취 등을 사용했으나 일반인은 뿔, 동, 나무 등을 사용했다. 핀의 일종인 비녀는 쪽진 머리를 꼽아 두는 역할을 하였으며 길이가 길어서 장식 용도로도 사용됐다. 정조의 개혁으로 비녀가 가체를 대체하게 되는 풍속이 더욱 보편화되게 되었다. 디자인과 형태 또한 더욱 다양해지고 재산 축적의 하나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뒤의 비녀의 길이는 33 cm~40cm에 이르렀으며 결혼한 여성의 전유물이 되면서 청혼의 표시로 비녀를 보내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 결혼식에는 족두리를 착용했으며 겨울의 추위를 막기 위해서 아얌을 착용했다. 오늘날에는 전통적 방법처럼 머리를 말아 놓은 부분에 관통하도록 하지 않고 비녀와 유사한 형태의 핀을 악세사리로 착용하기도 해서 머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비녀

비녀는 한자로는 잠(簪)이라 썼으며 기혼 여성들은 혼인을 올렸다는 증거로 착용했다. 비녀는 여인에게 품위와 정절의 표현이었다. 여인들이 머리를 지탱하여 올리기 위해 머리를 뒤로 묶어 둥그렇게 말아 꽂던 장신구를 비녀라고 한다. 비녀의 재료에 따라 신분을 알 수 있으며 상류층에게만 주옥이나 금이 재료로  사용이 허락되었다. 은이나 칠보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비녀 끝의 모양이 용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는 봉잠이나 용잠도 있다.  형태도 다양하여 그 모양에 따라 완두콩 모양이나 국화의 모양, 대나무의 모습, 호도의 모양, 석류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왕비는 봉황 잠이라고 불리는 봉황의 형상을 한 비녀를 착용하기도 했다.

족두리

원래 몽골 여자들이 쓰는 모자 장식의 일종인 족두리는원나라의 공주들이 고려로 착용하고 와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써서 장식하느냐에 따라서 족두리의  외향이 변형되어 화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별한 의식 때 부인들이 머리에 쓰는 관(冠)의 일종으로서 족아·족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족두리는 검은 비단으로 6 각형의 형태를 띠게 만들어 중앙에  솜이 들어 있고 가운데를 비워서 얹어놓고 비녀를 질러 고정한다.  사대부 부녀자 사이에서만 가능했던 것에서 조선 중기부터는 서민들에게도 혼례식 때 착용을 허용하여 장식을 해서 혼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부터는 족두리가 더 보편화되었는데 다리 머리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면서 이다. 머리에 가체와 같은 장신구를 얹는 것으로 머리장식을 다리 머리라고 부른다. 그 종류는 모양과 소재에 따라 어염족두리, 민족 두리,  솜 족두리 등으로 이름이 달리 불렸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것을 민족 두리라고도  한다.

아얌·조바위

추위를 막기 위해 부녀자들이 두르던 머리 장식으로서 일종의 방한모의 일종인데 이것을 조바위, 아얌이라고 불렸다. 두 종류 모두 머리장식이지만 아얌의 경우에는 귀를 덮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한복의 구성 요소 중에서는 아얌은 가장 빨리 사라지게 됐는데  이것은 아얌과 조바위가 별 구분없이 쓰이다가 조바위가 널리 퍼지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조바위는 조선 말기 양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며 일종의  방한용 모자이다. 두 종류 모두 귀를 덮이도록 생겼으며 귀부분에는 털이 달리게 되어 있고 위부분에는 트여있었다. 뒤에는 아얌드림을 늘어트려 띠처럼 내려오게 하, 귀를 덮는 부분은 약간 오그라들게 하여 바람을 막도록 천을 덧대었다. 색으로는 아얌과 조바위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으나 조바위의 경우 안감과 겉단 색을 다르게 하였다. 조바위의 겉에는 검은색이나 자주색을 쓰는 대신 안감은 남색이나 흑색, 자주색을 써서 대비 효과를 내었다.  조바위와 비슷한 것으로 남바위가 있으며, 조바위는 쪽진 머리가 보이도록 짧게 한 것이고  남바위는 보통 남자가 쓰던 방한모에 해당한다. 머리쓰개로 쓰이는 것은 아얌과 조바위, 굴레 등으로 나눈다. 보통 굴레는 여자 아이의 경우, 아얌은 젊은 여성, 조바위는 노인이 쓰던 것으로 칭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노리개

노리개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신분에 관계 없이 착용하였다. 신라 시대와 고려 왕조에는 허리띠에 노리개를 찼지만 조선시대에는 저고리가 짧아지면서 노리개의 위치가 저고리 아래 부분으로 올라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 의상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는 노리개는 단조로울 수 있는 의복을 치장하는 의미가 있었다. 가장 흔히 알려진 한복의 장신구는 삼작노리개로서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는 여성 장신구의 일종이다. 노리개의 속뜻은 "사랑하고 즐기며 아끼는 물건", "소중한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노리개의 컬러는 남·황·홍의 삼원색을 비롯하여 옥색, 보라, 자주 등 열두 색으로 다채롭고 다양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노리개가 왕실에서부터 일반 부녀자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착용하였습니다.

주머니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주머니를 만들어서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주머니를 선물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한복과 마찬가지로 주머니 또한 재질과 색상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며 신분에 따른 차등 적용이 있었다. 주머니는 저고리의 경우에 원래 안쪽에 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형태나 쓰임세에 따라서 두루주머니,  귀주머니,돈주머니 등으로 다르게 불렸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두 개 정도의 주머니는 소지하고 다녔다. 남성의 경우 단색인 많았고, 여성이나 아이들의 주머니는 자수로 꽃, 동물 등 여러 가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엽 낭이라 불리는 주머니는 주머니에 엽전을 담는 경우이고, 고려시대에는 향수를 담고 다니는 향낭을 비단 주머니로 만들기도 했다. 평민들은 헝겊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널리 사용되었지만, 조선 후기에 서양의 양복이 들어오면서 왼쪽 상단에 작은 주머니를 단 조끼가 등장하기 시작하게 된면서 주머니를 자기고 다니는 것이 줄어들게 되고 의상에 주머니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보자기

삼국시대 때부터 보자기의 사용이  시작했으나 조선시대에서는 보자기의 사용과 발전이 대중적으로 이뤄어 졌다. 궁중에서는 보자기의 쓰임새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세분화되어 있다. 궁에서 사용하는 보자기는 궁 보라고 불리었고, 그 종류와 함께 금박과 자수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다.   왕의 경우에는 여의주를 문 자수가 사용되거나 왕비의 대례식에는 봉황을 새긴 보자기가 사용되기도 했다.  한복에 어울리는 장신구의 의미로서 무엇인가를 정성스레 싸 둔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으므로 예물을 싸는 혼례용 보자기의 경우 그 아름다움도 더욱 가미되기도 했고, 물건을 싸는 용도였던 보자기는 복을 쌓아둔다는 의미를 지녀 무속 신앙과 관련된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보자기는 궁보 또는 민보라고 불렸는데 귀족과 왕이 사용한 궁보에는 다양한 자수와 금박이 쓰였지만 민보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어 상대적으로 소탈하며 그 색채도 투박하여 다목적 기능에 유용하였다. 조선 사회에서는 보자기는 상류층 여성에게도 바느질이 필수였던 보자기가 기초를 닦는 연습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규방의 애환과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한 도구가 된다. 왕비가 사용했던 보자기가 이런 역할을 하였다. 보자기는 한국문화를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인 보자기는 어떤 물건을 싸서 가지고 다니는 가방의 용도이기도 했으며 조각보(보자기 다른 이름)는 많은 용도로 쓰였다.  

한복의 관리

한복은 섬유에 종류에 따라서 주의할 점이 많다. 면일 경우에는 간단히 세탁을 해도 무관하지만 명주라면 드라이 클리닝을 하는 것이 좋다. 단, 소재가 얇기도 얇은 데다 바느질이 섬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드라이클리닝을 자주 하면 금방 상해버려 되려 옷이 상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나일론과 울,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를 겸한 한복의 원다의 경우라면 손빨래가 더 이롭다. 양복과 달리 한복은 옷걸이에 걸어두면 옥걸이가 걸린 부분의 색이 바래고 형태가 변하기 쉽기 때문에 담아 둘 곳을 따로 마련하여 수납하는 것이 좋다. 한복은 소재와 매무새가 평상복(서양의복인 양복과 양장)과는 차이가 있어 관리가 생명이라는 말이 있다. 한복의 보관은  여성의 저고리는 팔 부분을 꺾어 접고 남성 저고리는 소매를 고름과 만나게 해 접은 후 몸통을 한 번 더 접어 보관하며 저고리의 동정 부분은 주름을 펴서 보관해야 한다. 천연소재의 한복인 경우는 보관에 더욱 신경을 써야 오래 입을 수 있다. 또한 한복을 입기 전에는 때가 탄 곳을 간단히 닦은 후 다림질을 꼭 해야 한다.

 

집에 보관하는 한복을 사용전에 꼭 관리법에 따라서 닦은 뒤에 다림질해서 입을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한복에서 사용했던 보자기 지금은 어디에 사용되는지 찾아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집의 경우는 선물용 상자에 딸려 오기도 했습니다.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보자기와 주머니가 응용되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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